오늘 엄마랑 통화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어 씀. 2023 많이 배우는 해다. 근데도 아직 9월이라는 게 놀라울 뿐
사촌오빠는 서른 세 살. 특이한 사람이다. 인습으로 자연스레 자리한 구석이 그 사람에겐 거의 없다. 오빠를 이루는 건 부단히 생각하여 직접 구축한 본인 세계다. 본인 말로는 인문학을 ‘제대로’ 공부했다 하니 유명한 사상가, 작가들로부터 얻은 인사이트가 주된 소스이지 않을까 한다. 머리가 좋은데 그것을 신봉하는 면이 있어 나쁘게 말하자면 상식이 안 통한다. 가끔은 시니컬하고 남들이 굳이 하지 않는 말을 뱉어 눈총을 사는 일도 적지 않다(본인도 딱히 이해를 바라진 않는 것 같지만). ‘오만하다’고 엄마는 오빠를 표현한다. 그래도 서른 셋의 세월이 오빠에게 약간의 노련한 사회성을 일러줘 내겐 무던하게 그럭저럭 사는 것으로 보인다.
어제 과외를 끝내고 심심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오빠의 ‘오만함’을 상기시키는 새로운 썰을 들려주었다. 오빠가 결혼을 생각하는 본인 여자친구에게 ‘나 일부다처제로 살고 싶어’라고 말했다 한다. ㅋㅋㅋㅋㅋㅋ 뭔생각으로 그렇게 말했지? 웃겼다. 여자친구는 뭐라 답했더라냐 물으니 ‘나는 싫다’고. ㅋㅋㅋㅋㅋ 이제 엄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그걸 결혼 생각하는 여자친구한테 말하는 심보는 뭐냐, 정신머리가 …’ 얘기했고 이후는 재미가 없어 응~ 응~ 듣다가 지하철 탄단 핑계로 끊었다.
오늘, 엄마는 하루의 화제였던 양 다시 오빠의 그 일부다처제 이야기를 꺼내면서 그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내겐 웃기기만 한 일화이다. 그 기저에는, 오빠 같은 인물이 소설에서 묘사된다면 많고 많은 일화 중 꼭 이것을 끼워 넣고 싶을 정도로 오빠에 대해 많은 것을 내포하는, 그러니까 아주 ‘나 홍민구다’ 외치는 하나의 사례일 거라고 떠올린 상상이 있다. 이런 유희나 펼치고 있는데, 저편에선 오빠 머리가 살짝 어떻게 된 것 아니냐는 식의 동조를 바라는 것 같아 흥이 깨졌다.
흥이 깨졌다= 마음에 안 들었다. ‘마음에 안 듦’을 표현했다. 난 딱히 그것에 대해 가치판단하고 싶은 생각이 없고 그럴 필요도 못 느낀다, 알다시피 특이한 사람이고, 악의를 가지고 누군가에게 위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내겐 그저 그런 일화다, 엄마도 그냥 웃고 넘어가면 어떻겠냐, (오빠가 그러는 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일들에 계속 성내는 것 듣는 게 피곤하다.) 뒤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각자의 렌즈 차이를 얘기하다가 엄마가 네 생각은 존중하지만 그 방식을 ‘강요하지 말라’고 했다. 깨달음은 여기서 시작된다. 사실 뒤의 괄호가 내가 한 말에 대한 변호가 될 순 있었다.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피곤하니까) 그만하셔요! 였으니까. 하지만 일부다처제에 대한 옳고 그름은 이미 저편에. 최대한 유하게 표현했는데, 대체 어떤 부분에서 ‘강요’라고 느꼈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묻자 엄만 내 표현 하나를 짚었다. 생각을 말할 때 ’난 이렇게 생각해‘로 끝내면 충분하다고. ’이렇게 생각하면 어때?‘까지 가지 말고 ’난 이렇게‘ 까지만.
아하. 테크니컬한 조언이었다. 그렇게 돌아보면 난 대화에서 가끔 독단적인 사람이었다. ‘다름’ 자체에 대해선 개방적인 편인데, 유독 상황에 대해 가치판단이 우선인 사람과의 대화는 따분해서 못 참겠다. 나의 가치판단을, 상식을, 도덕률을 제시하라고 강요받는 느낌. 그래서 나와 가까운, 대화를 자주 나누어야 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다 그런 버튼이 눌리면 ‘이렇게 생각하는 건 어때?’(최대한 부드럽게 구사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지만 여전히 강요스러운) 꾀어온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봐. 저렇게 얘기해보자. 새로운 생각의 방향을 틔워주는 척 결국은 내가 재미있어하는 대화의 방향으로 등을 밀고자 하는 의중이었다.
여러 대화들이 유령처럼 스쳤다. 예전 친구와의 한 대화(사이가 멀어진 결정적인 계기)나 당장에 전애인과의 대화. 어떤 것이 싫으면 그것을 짚어야지 (‘피곤하니까’ 처럼). 그럴 용기가 없어서 에둘러 표현한다고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하는 것? 결국 맥락 없는 강요로 읽힐 뿐이라고. 애매한 정공법보다 ‘난 그렇게 생각해’에 머무르는 사회인의 화술을 구사해야 한다고. 누구도 정답은 아니고 다른 것 뿐이다. 내가 뭐라고 상대에게 이렇게 생각하라 마라 하겠나. 오빠의 오만함을 논하다 나의 오만함을 발견하다. ㅋㅋ
백기 들고 곰곰히 곱씹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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