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 잘츠부르크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하고 있는 동문 선배를 알게 되었다. 진로 상담을 해주십사 밥약을 걸었고 그 대화에서 드디어 관심 있는 필드를 찾았다.
이후로도 계속 도움을 받고 있는 중이다. 현직에서 일하고 있는 본인 친구에게 부탁해 이런저런 현실적인 조언을 들을 수 있게 해주고 같은 분야 석사를 준비하고 있는 지인을 소개해 주고 여기서 당장 들을 수 있는 강의를 찾아봐주고 노트북을 빌려 주는 등 분에 넘치는 호의를 받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하다. 주위엔 내 꼬투리나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뿐이었고 이제 그 사실에도 익숙해져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도와주려는 마음이 등장하니 쭈뼛거리게 되는 것이다. 이건 내가 워홀 하면서 보아온 차가운 현실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소개 받은 현직자 선배에게 궁금했던 것들을 모두 여쭤보고 전화를 끊자마자, 선뜻 부탁해주고 또 한편 시간을 내준 게 고마워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이게 현실이야 그러니 강해져야 해 혼자 잘 살 수 있어야 해 라고 생각해왔던 게 실은 울컥하는 마음들을 삭히느라 뇌되인 최면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요즘은 오래간만에 따뜻한 불을 쬔 어린애처럼 무방비 상태로 눈물 꾹 참고 다닌다.
오늘 마지막 출근을 했다. 밝은 것보단 어두운 것, 고상한 것보단 추악한 것, 청아한 것보단 더러운 것. 퀘퀘한 자줏빛깔 세계에 호기심 두고 들여다본 이십 대 초반이 이렇게 매듭지어진다. 그 속에서 취할 수 있는 영양분이란 모조리 취해 소화해냈고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이 든다.
하고 싶은 공부 하면서 재미있게 지내다 보면 남은 한 달이 어느 때보다도 빨리 갈 것 같아서. 그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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