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언니와 장 아무개의 집에 놀러갔다. 그는 변태 같은 눈빛으로 내게 추근덕댔고 나는 당장 나가고 싶어하면서도 그 자리를 감내하려고 했다. 내 짐들이(얼마 전 뮌헨 DM에서 사온 것들이) 그의 집 한 켠에 보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중에 언니가 카톡으로 ‘나갈까?’라고 보내왔다. 나는 그제야 태연한 척 짐을 싸고 겉옷을 입었다. 그는 당황해서 내 주위를 빙빙 돌며 중얼거리다가 내가 방에 들어가자 따라 들어왔다. 그는 웃더니 카톡을 보여준다. 언니가 ‘지우야 나갈까?’라는 카톡을 처음에 이 남자에게로 잘 못 보냈나보다. 언니도 많이 무서웠구나 생각했다.
꿈에서 그 남자의 이름은 ‘ㅇ허무’였다. 난 그 이름을 응용해 내가 쫄지 않았음을 보여주려고 조소 섞인 공격을 했다. 그건 그 남자의 버튼이었나보다. 나는 몰랐다. 그 사람의 눈빛이 돌변하는 것을 보고 내가 다른 방으로 뛰어 들어가니 무섭게 뒤쫓아 왔다. 문에는 잠금 장치가 없었다. 난 문을 닫고 등으로 버텼다. 문을 쾅쾅 두드리는 고동이 등 뒤로 느껴진다. 그 남자는 “‘허무’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느냐”고 절규한다. 문은 합판처럼 얇았다. 칼로 문을 내리찍으면 내가 함께 찔릴 것 같았다. 문에서 등을 떼고 발의 앞꿈치로 땅을 지탱, 뒷꿈치로 문을 밀어냈다. 문은 여전히 쿵쾅거린다.
언니는 어디에 있는 건지, 제발 와서 나를 좀 도와주었으면 하는데… 원망스럽다.
1) 여전히 난 무의식중에 언니를 일순위 보호자로 생각하는 듯하다. 언니가 나를 지켜줬으면 하는 생각. 합판같은 문으로나마 나를 보호하고 있으면서도 그와 같은 공간에 있는 언니를 걱정하진 않았다. 나는 언니를 그곳에 단순 나의 보호자로서 등장시킨 것 아닐까.
하지만 사실 언니는 내게 강압적이고 독재적이라 마음 놓고 털어놓을 수 있는 ‘보호자’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언니에게 반복적으로 기대가 좌절되면서 ‘아무에게도(그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겠다는 고집같은 게 생긴 것 같다.
2) 짐들이 집 한켠에 있다고 자리를 뛰쳐나오지 못하다니? 미련하다.
3) ‘나갈까?’ 라는 카톡. 민주 언니가 생각난다. 나도 누군가에게 ‘언니’라 불리는 상황에 놓인다면 이렇게 누굴 챙기려는 와중에 나 자신까지 구제하게 되지 않을까. 제 몸은 간수 못해도 책임감 하난 뛰어나다. 항상 그래왔다.
4) 언니도 많이 무서웠구나. 유년 시절에 집 근처 공용 주차장에선 풀어놓고 키우는 개가 있었다. 무섭게 생긴 야생의 큰 개였다. 언니랑 학교 가는 길에 항상 그 개를 마주쳤는데 그때마다 언닌 용감하게 날 이끌었다. 나중에 엄마에게 듣고야 알았다 언니 또한 그 개를 아주 무서워했다는 것을
5) 그 남자의 버튼. 의외의 공격성을 마주하는 것에 대한 공포. 돌변하는 눈빛. 살기를 정면에서 마주하는 순간.
6) 비슷한 악몽은 그 날 이후로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실제의 일들이 그러했듯 꿈에서도 사실 ‘별 일’이 일어나진 않는다. 당시의 공포만 재현된다. 감각이 곤두세워지고 여러 공포의 실마리들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장 아무개는 내 꿈에서 수없이 환생되었다. 근본적인 두려움에 대하여. 두려움의 근본에 관하여.
7) ‘ㅇ허무’로 산다는 것이 어떻기에 그는 그토록 절규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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