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5 연말 감정 한 달 전쯤 잘츠부르크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하고 있는 동문 선배를 알게 되었다. 진로 상담을 해주십사 밥약을 걸었고 그 대화에서 드디어 관심 있는 필드를 찾았다. 이후로도 계속 도움을 받고 있는 중이다. 현직에서 일하고 있는 본인 친구에게 부탁해 이런저런 현실적인 조언을 들을 수 있게 해주고 같은 분야 석사를 준비하고 있는 지인을 소개해 주고 여기서 당장 들을 수 있는 강의를 찾아봐주고 노트북을 빌려 주는 등 분에 넘치는 호의를 받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하다. 주위엔 내 꼬투리나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뿐이었고 이제 그 사실에도 익숙해져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도와주려는 마음이 등장하니 쭈뼛거리게 되는 것이다. 이건 내가 워홀 하면서 보아온 차가운 현실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 2024. 12. 27. 3월 29일 꿈일기 친언니와 장 아무개의 집에 놀러갔다. 그는 변태 같은 눈빛으로 내게 추근덕댔고 나는 당장 나가고 싶어하면서도 그 자리를 감내하려고 했다. 내 짐들이(얼마 전 뮌헨 DM에서 사온 것들이) 그의 집 한 켠에 보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중에 언니가 카톡으로 ‘나갈까?’라고 보내왔다. 나는 그제야 태연한 척 짐을 싸고 겉옷을 입었다. 그는 당황해서 내 주위를 빙빙 돌며 중얼거리다가 내가 방에 들어가자 따라 들어왔다. 그는 웃더니 카톡을 보여준다. 언니가 ‘지우야 나갈까?’라는 카톡을 처음에 이 남자에게로 잘 못 보냈나보다. 언니도 많이 무서웠구나 생각했다. 꿈에서 그 남자의 이름은 ‘ㅇ허무’였다. 난 그 이름을 응용해 내가 쫄지 않았음을 보여주려고 조소 섞인 공격을 했다. 그건 그 남자의 버튼이었나보다. 나는.. 2024. 11. 17. 신트라에서 2024년 1월 오늘 생리통 최악이었다. 자연을 보겠노라 들어온 이 시골 마을에선, 결국 4박 5일간 별달리 한 것 없이 떠나게 생겼다. 오늘 아침에 진통제를 먹고 약발이 돌기를 기다리면서 침대에 엎드려 있다가, 이 고통이 내 ‘존재’에 따른, 오직 혼자 감수해야 하는 감각임에 화가 솟구쳤다. 이 통증에서 조금 멀어지기 위해 작동한 본능은 별다른 게 아니었다. 거의 일 초에 세 가지의 잡념이 산발적으로 그러나 분명하게 피어올랐다. 매트리스를 손톱으로 벅벅 긁는 동안 떠오른 생각은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었다. 출산의 고통은 어떨까 난 몇의 자녀를 갖는 게 좋으려나 임신하면 생리를 열 달은 안 하네. 헉 출산은 그럼 단지 연기에 따라 축적된 고통의 폭발이 아닌가. 불교의 업보가 이런 개념이기도 하려나. 생리는 업보인가. .. 2024. 11. 17. 2023년 9월 말 오늘 엄마랑 통화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어 씀. 2023 많이 배우는 해다. 근데도 아직 9월이라는 게 놀라울 뿐 사촌오빠는 서른 세 살. 특이한 사람이다. 인습으로 자연스레 자리한 구석이 그 사람에겐 거의 없다. 오빠를 이루는 건 부단히 생각하여 직접 구축한 본인 세계다. 본인 말로는 인문학을 ‘제대로’ 공부했다 하니 유명한 사상가, 작가들로부터 얻은 인사이트가 주된 소스이지 않을까 한다. 머리가 좋은데 그것을 신봉하는 면이 있어 나쁘게 말하자면 상식이 안 통한다. 가끔은 시니컬하고 남들이 굳이 하지 않는 말을 뱉어 눈총을 사는 일도 적지 않다(본인도 딱히 이해를 바라진 않는 것 같지만). ‘오만하다’고 엄마는 오빠를 표현한다. 그래도 서른 셋의 세월이 오빠에게 약간의 노련한 사회성을 일러줘 내겐.. 2024. 11. 17. 2023년 5월 23일 의지로 버티던 며칠간 밤마다 괴로웠다. 전담이 집에 있었을 땐 그걸 한 손에 들고 몇 십분간 쳐다보고 있었다. 물건들을 효영언니에게 들려보낸 후엔 도저히 안되겠어서 연초 사러 나간 게 한 번, 외투를 입고 벗은 게 며칠. 결국 토요일 오전 기상하자마자 병원에 갔다. 금연약(니코챔스)을 타와서 지금 이주 째 먹고 있다. 약 부작용 중 꿈이 과도하게 생생해진다는 항목이 있었다. 나도 비켜가진 못했다. 요즘 재미난 꿈을 하룻밤에도 몇 차례씩 꾼다. 여러 지인들이 꿈에 번갈아 나오는가 하면 어떤 날은 연초를 우걱우걱 씹고 뱉다가 깼다. 효영 언니가 그날 집까지 걸어 오면서 담배를 끊고 싶은 이유를 묻기에 손가락 접어가며 나열했더니 7개는 족히 넘었다. 말하다 중간에 아이스크림 사먹으러 마트에 들르느라 몇 개는 .. 2024. 11. 17.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