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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드디어 서울 집 구함

by 홍지우 2025. 1. 9.

2월 초 귀국 티켓을 끊고서부터 아 이제 슬슬 돌아가서 지낼 서울 집을 구해야 할 텐데 하는 초조감이 들었다. 안 그래도 도서관과 가까운 서문 지역은 좋은 집 구하기가 힘들다고 들었고 기말 시험 끝나고 이제 송도 새내기들도 신촌으로 올라올 채비 할 걸 생각해 보면 2월에 한국 가서야 부동산 돌아다녀야 한다는 게 아무래도 불안했다.

부모님께 부탁하기도 상황이 여의치 않았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대부분 외국 나가 있거나 고시 준비 중이거나.. 여건이 되는 친구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런 중대사를 부탁하는 건 망설여졌다. 머리카락이야 머 다 타버리든 쥐파먹은 모양을 하게 되든 다시 자라니까 친구에게 가볍게 부탁할 수 있었지마는 집은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 부탁한 입장이지만 막상 들어간 집이 엉망이라면 속으로 남탓을 안 할 자신이 없었다. 배은망덕해질까봐 두려웠다.

와중에 손 놓고 있을 순 없으니 몇 군데 부동산에 연락을 돌려 봤는데 한 부동산에서 당일 아침 좋은 매물이 나왔다며 그 날 중으로 올 수 있는 사람을 보내보란 답장이 왔다(한국 시간 오전 10시, 여기 시간 새벽 2시). 하필 시험기간이라 민폐를 무릅쓰고 서울에 있을 것 같은 친구 네다섯 명에게 연락을 돌려 봤는데 고맙게도 예율이 시험 보고 나서 오후 4시 쯤 들러보겠다고 말해줬다. 그래서 꼭 확인해줬으면 하는 리스트를 여기 시간 새벽 4시에 작성해서 보내고, 예율을 통해 영상통화로 집을 같이 볼 요량으로  한국 시간 오후 3시 즉 여기 시간 아침 7시까지 어거지로 밤을 새우고 있었는데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다른 부동산에서 해당 매물 나갔다는 연락이 왔으니 올 필요 없을 것 같다고.

이렇게 내가 부동산에 연락해서 매물 소식을 듣고 한국 친구에게 또 연락을 돌려서 방문을 부탁하고… 이거 너무 비효율적이란 걸 깨달았다. 시차 때문에 내가 일일히 연락을 확인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나마 하루에 끝나면 다행이지 며칠 동안 이게 이어진다면 난 일상 생활이 불가능해질 거다.




한편으론 자취 지역 관련해서도 고민이 많았어서 망원으로 갈까 성산동, 홍대, 연남, 연희 이리저리 반경을 넓혀 생각하면서 에타에 해당 지역 정보가 있나 꾸준히 들여다 보고 있었는데, 일이년 전 되게 깔끔하게 집 구하는 칼럼 같은 걸 정리해서 연재해둔 한 글쓴이가 눈에 들어왔다. 당시 그런 글로 본인을 홍보하고 오픈 카톡으로 신청자를 받아 동문 대상으로 집을 같이 보러 가주는 서비스를 진행한 것 같았다(당연히 유료).

오픈 카톡으로 들어가서 서비스 현재도 진행 중인지, 동행이 아닌 대리 컨택도 가능할지 물으니 현재 서비스 자체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체념하고서 그냥 지인 한 명에게 일당을 주고 대리 컨택을 부탁할까 하고 있었는데 반나절 뒤에 다시 연락이 오길,

“서비스까진 힘들겠지만, 상황이 마땅치 않으시다면 제가 가능한 선에서 좀 도와드리고 싶은데요. 혹시 어떤 조건 예산 생각중이실까요?”

구구절절 예산과 조건과 부탁하게 된 사연과 칼럼 많이 참고했다는 감사 인사와 (깡)시골에 계시는 부모님 얘기와 나름 생각해 둔 절충안까지 TMI를 남발하고 나니

읽어보고 생각해보겠다는 답장 이후

결국 수락해 주었고 이후로 그 분의 역할 구체화부터 서비스 이용료는 어떻게 책정할 것인지, 내가 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타협 안 되는 것과 되는 것, 당일 소통을 어떻게 할 건지 등등 기나긴 핑퐁 끝에 몇 가지 사항을 엑셀로 만들어서 넘겨주었다. 오래간만에 팀플 하는 것 같았다.

다만 일정은 빠를수록 좋으며 12월 내로 방 가계약을 마치고 싶다고 했는데 그 분이 본업 프로젝트에 급하게 투입되는 바람에 스케줄이 조금 밀렸다.




결전의 날은 1/6이었다. 전날엔 서로 직방에서 조건에 부합하면서 괜찮아 보이는 집들을 공유했는데 내가 보내는 족족 이건 근린생활시설이라 안 되고, 이건 방쪼개기라 안 되고, 이건 어떻다 저렇다 밴을 놔 주어서 흡족했다.

오전 11시, 12시 30분, 3시 부동산 만남을 예약해두었다기에 잠깐 쪽잠을 자고 여기 시간 새벽 세 시에 힘겹게 깨어났다. 그 분은 본인이 둘러보다가 어느 정도 괜찮아 보이는 방이 나타나면 내게 영상 통화를 걸어 보여주기로 했다. 또 다른 내 요구 사항 중 나 대신 임차인 권리 주장을 잘 좀 해주십사 하는 내용이 있었고 부동산에는 사촌동생 방 대신 봐주러 왔다고 말해둔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린 초면에 반말로 어 지우야, 어 오빠~ 응 화장실 좀 보여줘바 흠 하면서 통활 이어갔다. 둘 다 말투가 미묘하게 정중하고 어색했다

집 전반적인 인상이나 장단점은 그 분이 카톡으로 더 자세하게 말해줬다. 이 집에 살면 제습기 필수일 것 같다, 습도 조절이 안 되는 것 같다 등등. 대학가에서 집 구하는 건 화투와도 비슷한 면이 있어서 어느 정도 괜찮다 하면 당장 go or stop을 결정해야 했는데 그런 면에서도 충분히 조언해줘서 고마웠다.

한 세 시간 가량 집을 보아 주던 끝에 이 집 계약 추천한다고 하는 연락이 왔고 논의하다가 거기에 가계약금 걸기로 했다. 융자 문서까지 확인하고 계좌 받아서 가계약금 송금 그리고 끝. 대리 컨택의 서비스 비용은 시급으로 계산해서 총 10만원이었다.




이건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곳의 사장님한테서 배운 태도다. 이런 저런 잡일을 다 남한테 시키고서 용돈 주는 식으로 본인 에너지를 최소화하는데, 나름 서비스 비용을 받는 셈이니 사람들 사이에서 군말도 안 나오고 평판이 좋다. 그 방식을 가만히 지켜보니 유레카 소리가 나오는 거다. 거의 불가능한 일을 죄다 혼자 하려고 끙끙대거나 지인에게 아쉬운 소리 하고 불편하게 부탁하느니 이렇게 비용을 지불하고 차라리 남에게 맡겨 버리는 게 낫다는 거. 역시 노련한 생활의 지혜는 무시 못한다.

암튼간에 집을 구해서 속이 다~~ 시원하고 묵은 체증이 다 씻겨 내려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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