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엔 잘츠부르크 성 다녀왔다.
23년도 여행자로 여기 왔을 때 거의 유일하게 들른 랜드마크였다. 왕복 푸니쿨라(케이블카) 결제하기가 아까워서 내려오는 것만 끊고 힘들게 힘들게 올라갔는데 정상에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는 것을 발견. 재미난 구경이라도 있나 해서 합류했는데 그게 내려오는 푸니쿨라였음.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ㅋㅋ 급행열차마냥 슉슉 내려가버리는 푸니쿨라 안에서 속으로 절규했다.
요새 정상에서 보는 겨울의 잘츠부르크는 참 아름다웠다. 서쪽에선 해가 지고 북쪽으론 잘자흐 강이 길게 아주 길게 늘어져 있었다. 우리 집이 어디쯤 있을까 헤아리다 엄마한테도 영상 통화로 경치를 보여주고 내려왔다.
게트라이데 거리에서 우리 집 방향으로 올 때 꼭 들르게 되는 길인데 해질녘에 이리 예쁜 줄도 엊그제야 알았다. 매번 빨리 집 가고 싶어서 폭풍 직진 해온 듯.
며칠 뒤엔 엄마랑 통화하다가 또 철 없는 말을 내뱉었는데 너무 따뜻한 말이 되돌아와서 슬펐다.
토요일 아침. 날이 많이 풀려서 가볍게 입고 러닝 다녀왔다. 오랜만에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자세를 꼿꼿하게 고쳐세웠다. 고거 잠깐 뛰었다고 스스로가 아주 참지 못하게 자랑스러워져서 주눅든 양 구부정하게 있는 게 용납이 안 될 지경에 이른 거다. 그러나 다음 날 난 다시 늦잠 자고 구부정하게 일어나서 달달달 바퀴 끌고 청소하러 간다…
그러나 당시엔 스스로 너무 대견해서 에너지가 주체가 안 됐다. 봉이라도 있었으면 걍 매달려가지고 턱걸이가 머야 풍차돌리기까지 할 자신 있었음.
집에 들어가서 근력 운동을 더 할까 하다가 하늘이 푸우우우르길래 카푸치너 산에 뛰어 올라갔다 왔다. 다음날 골골대면서 일어난 건 근육통 때문이었다. 팔 근육은 대체 왜 아픈 건지, 꿈에서 턱걸이를 했나 싶다.
집에 들러서 현금 가지고 다시 나옴. 친인척을 위한 귀국 선물을 사러 나가야 했기 때문
저녁엔 예매해둔 아카펠라 공연을 보러 다녀왔다. 테너 소프라노 등 파트마다 가장 크게 부르는 리더가 한 명씩 있는 듯했고 그 외엔 아무리 입을 들여다 보아도 그 사람 목소리를 선율에서 찾아낼 수 없었다. 또 바가지 머리를 한 어떤 남자는 노래 부르면서 안면 근육을 많이 사용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심지어는 두피까지 노래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바가지 머리가 자꾸 가발처럼 앞뒤로 들썩들썩 눈썹이랑 머리랑 닿았다가 멀어졌다가, 홀리쉿 너무 신기했다. 이게 가능한 거였음?
어쨌거나 오랜만에 귀 호강하고 집 들어와서 슥삭슥삭 대청소했다. 머문 자리는 깔끔하게
아 캐리어에 짐도 거의 다 싸두었다
일요일엔 여기서 무용 학교 다니는 수정 언니와 약속이 있었다. 같이 잔디밭에서 춤추기로 했는데 비 예보가 있길래 우선 카페서 만났다. 이런 저런 얘기 하다가 언니가 연습 일지를 보여줬고 읽으면서 가슴이 쿵쾅거렸다.
내가 압도될 정도의 감동을 받는 순간들엔 관통되는 하나의 이미지가 있다. 조각칼로 자기 몸집의 몇 배나 되는 얼음에 흠집 내듯이, 절실한 노력의 과정 혹은 진심으로 임하는 어떤 시도들. 한 달 전엔 연극과 졸업 발표회에 갔다가 한 시간 반 내내 울다가 나왔다. 코믹극이었고 독일어라 알아 듣지도 못했는데 졸업생들 연기하는 모습이 어여쁘다 해야 하나. 간간히 마주하게 되는 감정이지만 형용하기 어렵다. 고딩 땐 이런 일도 있었다. 당시 그닥 사이가 좋지 않던 남자애들 무리가 어느 날 갑자기 무슨 옷 브랜드를 만들어서 장사를 할 거라고, 투자금 받겠노라 설치고 다녔는데, 그래도 혹시나. 그게 정말 어떤 ‘시도’이길 바라는 마음에서(진심이었다) 오천원이란 거금을ㅋㅋ 주었다. 내가 단연 압도적인 대주주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삥뜯겨본 기억이다.
언니에게 즉흥으로 추기 좋은 음악을 추천해달라고 했는데 어떤 음악이든 가능하다고 했다. 김광석 노래에도 춤을 춘다고 해서 약간 놀랐다. 본인이 좋아하는 음악은 이거라고, 보여줘서 찍어 뒀다.
사실 아침에 꽤 춥고 공기가 축축하길래 비가 오겠거니 하고 춤 출 생각 없이 치마 입고 나갔다. 카푸치너 산에서 뛰어다니는 객기를 부린 게 바로 어제였어서 몸이 통나무 같기도 했다. 근데 이미 언니의 연습 일지를 본 상황. 버튼 꾸욱 눌려서 당장 춤추러 가자고 앞장섰다.
기대한 것 보다도 훨씬 더 재밌었다! 언니한테 감각 집중하는 법 몸 움직이는 법 배우면서 같이 몸 풀다가 언니가 먼저, 그 다음으로 내가 즉흥을 췄다. 약간 게임 같았는데, 상대가 춤 추는 사람의 신체 특정 부위를 터치하면 그 부위가 춤을 끌어가도록 하는 룰이 있었다. 나는 언니의 손, 배, 왼쪽 눈, 입술 등을 순서대로 가리키면서 넋놓고 구경했다. 언니는 내 엄지 손가락과 갈비뼈, 오른쪽 무릎, 뒷통수를 터치했다. 거울도 없이 거리에서 춤추니까 움직임에 담기는 자의식이 줄어드는 걸 느꼈다.
언니는 질감을, 감정을, 형체와 공간 그 다른 무엇이든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연습을 하면 좋다고 말했다. 보송보송한 실망, 우주 속의 올챙이, 거친 것 매끄러운 것 등등. 아깐 언니가 카페 테이블을 쓰다듬으면서 질감을 말하는데, 너무 흥미로워서 소리를 꽥 지르고 싶었다. 내가 현대 무용을 추고 싶었던 이유다. 이 세상의 모든 것, 존재하지 않는 것까지도. 언어 눈빛 말투 웃음소리로 마저도 때론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내 마음대로, 내가 소화한 대로 내 두 다리와 팔 얼굴 몸통을 가지고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거!!!!!!!!!! 헤롱헤롱해진다.
내 즉흥에 피드백 주는 언니 뒤로 가로등, 덤불, 맛동산 처럼 생긴 나무, 돌담,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이 보이는데 몇 분 전과 비교하여 각 이미지들의 다가오는 속도가 무서우리만치 빠르게 느껴졌다. 이제 어색하게 거울 돌아보면서… 맘대로 되지 않는 엉덩이로 트월킹 연습하는 건 그만두련다
언니와 헤어지고 잽싸게 발걸음을 옮겨서 다섯 시 삼십 분, 사우나에 도착했다. 엊그제 맥주를 한 캔 좀 덜 되게 마셨는데 그때문인지 피부에 다시 염증이 올라오는 기미가 보였다. 그걸 뜨거운 바람으로 어찌 해보겠다고 사우나에 비장하게 들어섰다. 일요일 저녁이라 사람이 미어터졌다. 구름이 그새 다 걷혔는지 야외 썬베드에 누워 있으니까 반짝거리는 위성들이 별처럼 온 하늘에 박혀 있었다. 별 같은 위성.. 별 같은 위성.. 생각하면서 속으로 춤을 좀 추다가 다시 사우나 들어가길 반복
습식 사우나에선 증기 때문에 사람들 얼굴이 그저 살색으로 보였다. 솜 채워진 얼굴 없는 인형들이 한 데 모여 있는 광경처럼 느껴져서 무서웠다.
부지런히 유우머를 날리면서 자기 혼자 배꼽잡고 웃는 36세 남자를 또 마주쳤는데 이제 나를 자기 깐부라고 생각하는지 자꾸 내 옆에 앉았다. 게다가 이번엔 내가 가장 가운데에 앉아 있었어서 그 방 안의 사람들이 그 남성에게 보내는 눈초리를 날것 그대로 구경할 수 있었다. 그 표정들이 ㅋㅋㅋㅋㅋ 너무 솔직해서 웃겼다. 오스트리아 사람들 되게 친절하지마는 누군가가 시끄럽거나 거슬리게 굴면 가차없이 전혀 검열 안 한 표정과 눈빛으로 상대를 비난한다. 깐부에게 너는 어디서 태어났으며 어디서 자랐느냐고 물으려다가 관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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