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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턴트

(젊음)! 헉

by 홍지우 2024. 11. 17.

젊음은 늙어서야 인식된다고들 하지만 당시에도 그걸 실감할 수 있는 계기들이 분명 있다고 봄. 나는 스물 한 살 여름 고성에 놀러 가서 (젊음)! 을 처음 실감함


게하 호스트가 내한 공연 보러 간다고 비행기 타고 떠나 버리고 나랑 노총각 셋이 남겨졌던 날. 아저씨들이랑 바베큐를 하면서 대화하는데 대체 내 포지션을 종잡을 수가 없는 거임. 여자1이어야 하나? 어린 애여야 하나? 내 나이의 두 배는 산 사람들이라 주입받은 노인 공경 유교 사상이 스물스물 올라왔음. 경청/리액션. 근데 이 아저씨들이 나를 여자로 대하는 거임. 묘하게 자세들이 내 쪽으로 기울어 있었고 내가 주방에 갈라 치면 됐다고 만류하고 나섬. 젊은이가 늙은이를 해먹이는 게 맞는 것 같은데요. 여튼 ‘나이’가 사라진 이 시점부터 네 명이 ‘인간’으로 인식됨.

아빠 삼촌 할아버지 교수님 뭐 이런 관계성 하나도 없이 40대 남성을 마주하긴 처음이었음. 위와 같은 단어들엔 연령대가 내포되기 때문에 그로 맺어진 관계들에선 나이를 하나의 새로운 범주로 인식하기 어려움. 하지만 넷이 인간으로 모이고, 그 안의 작은 특성으로 나이가 존재하면 그게 ’차이‘로 오히려 두드러지는 거임. 인간들이긴 한데 나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그 사람들을 보면서 젊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음.



마당에 나와서 담배 피는데 한 아저씨가 아직 못 본 영화가 많아서 좋겠단 말을 건냄. 처음인 것들이 많아서 참 부럽다고. 난 지금껏 좋은 콘텐츠 많이 알고 있는 경험 많은 사람들을 부러워해 왔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제부터 쌓아올릴 내 입장이 더 호사인 것 같았음.

몸에 관해서도. 당시는 피부 질환으로 고생하던 때인데, 와중에 같이 있으니 내가 너무 탱탱한 거임. 내가 무슨 비관에 빠져 흑백 인간이 되어 있어도 내 몸 자체에서 생기가 지워지지 않는 건 젊음 덕분임. 이후로 샤워하고 나와서 내 알몸을 가끔 감상해주고 있음. 젊고 곧은 몸. 이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게 해야지 하는 자기 암시가 되기도 함.



뭐든 집착하는 건 경계해야지 하는데.. 사실 지금 그 시절을 살고 있다는 게 비현실적이라 느껴질 만큼 행운이라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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