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의미심장한 꿈을 꿔서 종일 생각하다가 쓴다
갑자기 타투를 받아야겠다 싶었다. 누가 타투를 받으라고 했던 것 같은데. 평소에 그것에 대해 별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도안도 무엇도 없는 상태로 타투샵으로 직행했다. 부위부터 디자인까지 걍 다 알아서 해달라고 했다. 고통은 없었다 수면마취를 한 것처럼 자고 일어나니 몸에 타투가 새겨져 있었다.
뜬금없는 부위에 괴상한 그림이었다. 쇄골 반뼘 아래부터 배꼽 밑까지 상체 전면부가 세 개의 그림으로 덮여 있었다. 여자, 근육질의 남자, 양초 같은 사물이 나란히 나열된 형상. ????? 이제 이걸 몸에 지니고 살아가야 하나, 눈앞이 캄캄했다. 누굴 원망할 수도 없는 와중에 이승현의 깜찍한 타투만 아른거렸다.
하루종일 웃통을 벗고 거울만 들여다 봤다. 직접 선택하기 싫어 내뺀 결과였다. 타인의 선택들이 ‘내 몸’에 문신으로서 새겨졌고 이제 내겐 그걸 지닌 채 살아갈 운명 같은 게 지워진 셈이다. 후회를 후회를 억겁의 후회를 하다가 깨어났다.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아침엔 사우나에 늘어져 있으면서 ‘의탁’ 같은 것을 생각했다. 예율에게 매직을 맡겼을 때 그의 실수에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었던 건 사실, 머리카락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 없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주기도문을 외는 예율에게 ‘애초에 널 그렇게까지 신뢰하지 않았다’고 외치며 진정시켰다) 머리카락은 ‘나’이기보다 ‘나’에 달려 있는 말단 부속품에 가깝다. 의탁이나 전가를 고민과 책임에서 해방시키는 유용한 도구 취급을 한 것은 앞선 상황들이 그 경우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갗은 다르다. 그건 ‘나’이고 (은유적으로 그 의미를 넓혀보자면) 내가 하는 생각이며 나의 생활과 삶이다. 얼빠진 채로 억울한 표정을 짓던 거울 속 모습을 기억한다. 머리가 클수록 내가 내리는 결정들은 말단 부속품보다 소화기관과 내장에 가까운, 근본적인 생활과 관련되지 않을까. ‘그에도 같은 태도를 유지하다간 이런 결말을 피치 못할 것’이라는 경고가 꿈에서 보인 것이라고, 결국은 또 실용주의적 교훈.
지금 당장 주의해야 할 의탁이란 무엇인가 생각했다
super-ego 시대에서 의탁은, 누군가의 명령에 순응하는 방식이 주가 아니다. 이것은 노골적이기에 당사자에게 단 한 번이라도 자각할 기회가 있었다면 이후의 시도들도 알아차리기 쉽다. 그것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점도 그에 반발하기 쉽게 만드는 요인이다.
하지만 현대의 주가 되는, 대중적 가치판단에 차츰 스며드는 쪽의 의탁이라면 상황이 다르다. 그것은 강압적인 명령과 차원이 다른 부드럽고 조용한 의탁이다. 통상적으로 동의되는 가치에 기반하기 때문에 개개인이 쉽게 반발하지 못한다. 그에 문제의식을 느낀 개인이라도 그것은 항체를 만들어내는 데에 한계가 있다. 그것이 보편적으로 공유된 가치라는 점이, 그것에 오류가 있음을 의미하진 않기 때문이다. 대다수가 따르는 만큼 그것이 실은 ‘보편적인’ 정답일 수 있다.
산학협력단에서 봰 과장님은 초년에 공부 열심히 해서 전문직 가는 게 최고라고 후회 섞인 조언을 해주셨다. 어른들의 한탄 같은 조언은 달콤한 최면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그들 후회의 반대로만 하면 성공적인 중년이 보장될 것처럼.
주위 친구들을 둘러보아도 길은 다를지언정 비슷한 가치를 향해 노력하고 있다. 대화를 해보아도 결국은 대중적 가치 판단이 왜 옳은지를 교환하는 모양새. 이제 내가 자기 합리화를 하는 건지 성인으로서 현실감을 찾아가는 긍정적인 변화 중에 있는 건지 분간조차 어렵다.
쓰다 보니 내 얘기다. 내가 의탁한 가치들은 물질 만능 의식(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과 인정 욕구(직업에 따른 차등적 인정)이다.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은 제쳐둔 채 머리 싸매고 하는 진로고민은 걸음마다의 확신을 앗아가지 않겠나. 하지만 도저히 아리송할 적엔 그냥 남들이 좋다는 거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생활, 내 몸에 새겨질 문신과도 같은 것이 무엇일지 지금까지의 항목을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1. 무슨 생각을 하며 살 것인가
2. 24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3. 직업적 소명을 핑계로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할 여지는 없는가
아직 갈 길이 먼 생각이다. 사람들과 대화 나누다 보니 연령 불문 진로 고민은 끝이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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