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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24년 10월 다합과 카이로 룩소르 (2)

by 홍지우 2024. 11. 19.

넷이 배 타고 나가서 펀다이빙한 날



여긴 이집트의 클럽 같은 곳이었다. 시샤 피우면서 차를 마시고 무언갈 두드리면서 모여 노래 부른다.


한편 여행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아직 못 해본 것이 많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다합엔 별 보러 다니기 좋은 스팟이 많은데, 적기인 초승-그믐달이 여행 초반이었어서 밤에 쏘아다닐 생각을 미처 못하고 숙소에만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늦게나마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몸을 바쁘게 움직이기로 했다. 그 상위에 들었던 것은 블루홀과 카이로, 룩소르 여행과 프리다이빙 자격증 취득이었다.


우선 다합 여행자 오픈채팅방에서 라스 아부갈룸 섬-블루홀 1박2일 동행을 구한다길래 따라 나섰다. 나를 제외한 다섯 명은 같은 게하에 머물고 있는 여행자들이었다.


별 아래에서 하룻밤 노숙하고 일어나 블루홀로 향하는 일정이었다. 쌀쌀하고 파리도 많아 숙면을 취하진 못했다.


청결 민감도와 꽉 막힌 사고의 연관성을 주장하는 학자의 인터뷰를 본 적 있다. 청결, 위생에 민감한 사회는 도덕과 질서에 더 엄격한 기준선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치안이 좋으나 다양성 측면에서 아쉬운 사회의 양상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턴 내 뇌피셜인데, 이 가설을 개인 차원에 적용해 보아도 통할 것 같다. 전에 알던 지인은 약간의 결벽증세가 있었는데, 조금 대화해보니 ‘납득 안 되는 건 납득 안 되는 것’ 이라는 캐릭터가 강해 놀랐던 기억이 있다. 반대로 위생 관념에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지인들은 대체로 타인에 대한 개방적 사고와 관용을 넘어, 자기 스스로부터 자유분방하게 사는 편. 지금 생각해보니 이런 주변통계학을 바탕으로 어렴풋이 그 경향성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각각 장단이 있을테고 중도가 제일이라는 말도 여전히 통하겠지만,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건 다양성과 관용이라 가끔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고 자는 거 너무 좋다.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밟고 다닌 모래 투성이 쿠션 위에 머리를 누일 때에 처음은 찝찝해서 아주 굳어 버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몸과 쿠션에 무슨 구분이 있다냐 모든 것은 헛된 상이로소이니.. 현자에 빙의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섬에서 본 고양이


아침을 먹고 다시 배 타고 나가서 블루홀로 입성했다. 블루홀 초입에는 이곳에서 죽은 다이버들을 기리는 묘비들이 있다. 바다 앞에서 겸손하라는 메시지 같았다.

알록달록한 별사탕 같았다

블루홀 물고기들은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아서 신기했다. 다합 앞바다인 라이트하우스에서 스노쿨링이나 다이빙을 하다가도 잽싸게 숨는 물고기들을 보면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육지 동물인 인간이 괜한 호기심 때문에 산소통 같은 걸 발명해서 저들 삶의 터전을 침범하는 것 같아서. 근데 여기 물고기들은 왜인지 사람을 몸집이 좀 크지만 유순한 물고기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덕분에 물고기떼 한가운데서 같이 수영할 수 있었고 물고기 하나는 자꾸 따라오라는 듯이 나를 돌아보면서 속도도 맞춰 바다 어디론가 날 데려갔었다. 블루홀은 내가 가본 바다 중 가장 아름다웠던 것은 물론이요 물고기들이 친절했다..



1박 2일 여행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와 서둘러 짐쌌다. 밤 버스를 타고 바로 카이로로 떠나는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다합에서 카이로까지는 미니밴으로 9시간. 잠도 못 자고 7시간 쯤 달렸나, 검문소에서 내 비자에 문제가 생겨 경찰에게 호송 당했다. 비자 스티커에 도장이 함께 안 찍혀 있는 게 문제였는데, 그 스티커를 무효로 본다면 나는 불법 체류자 신분이었다. 카이로 공항에 가서 해결이 안 되겠느냐고 하니 내가 입국한 다합 근처 공항(심지어 다합에서도 한 시간 거리인), 샴 엘 셰이크로 가야 한다고 했다. 난 경찰이 내려준 톨게이트 같은 곳에서 샴엘 셰이크로 가는 미니밴에 흥정하여 얻어타고 다시 여덟 시간을 달려 공항 근처 호텔에서 내리게 된다. 구글맵으로 공항 찍어 보니 걸어서 한 시간 반. 같이 미니밴 탔던 현지인들이 도와주어 택시를 잡아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택시가 잘 다니지 않는 곳이라 안 그래도 비싸게 주고 탔는데, 와중에도 공항 입장료가 있으니 들어가서 내리려면 돈을 더 내란다. 그냥 공항 입구서 내렸다.

터미널 1과 2가 있는데 둘의 거리는 400미터 정도. 공항 검문소 직원들에게 비자 문제가 생겼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터미널 1로 가라고 안내해주었다. 터미널 1로 갔더니 국내선은 터미널 2라며 입구에서 들여보내주질 않는다. 터미널 2쪽으로 가는데 비자 문제는 터미널 1이라며 계속 나를 터미널 1로 보낸다. 그 사이를 네다섯 번 왔다갔다 했나. 계속 오니까 터미널1 직원도 화를 낸다. 직원은 영어를 잘 못 하는지 의사소통이 안 된다. 백팩이 무거워서 어깨도 뻐근하고 26시간 가까이 자지 못한 상태였는데 어디서도 날 받아주질 않으니 의도치 않게 눈물이 철철 나왔다. 선글라스 뒤로 눈물을 폭포처럼 쏟음서… 터미널 2쪽 직원에게 아니 쟤가 안 들여보내준다, 통화 좀 해줄 수 있겠냐 하니 머라머라 통화 끝에 mash mash(okay)하고 끊는다. 알고 보니 터미널1 직원 말이 맞았다.

그제야 간신히 터미널 2에 들어가서 가장 빠른 비행기 티켓 사고, 직원 따라 다니면서 비자 문제 해결하고, 기내수화물 검사 받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 와중에 한 번 터진 울음이 멈추질 않아 선글라스 끼고 계속 울고 있었다. 몸 검사하던 여자 직원은 너 왜 우니 친구 때문이니 가족 때문이니 물으면서 울지 말라고 걱정했다. 나는 걍 오늘 존ㄴ아 힘들었어 ㅠㅠ 하면서 팔 들고 몸 더듬더듬 당했다.

두 시간 걸려 카이로 공항으로 입국. 공항서부터 호갱을 노리는 택시 기사들과 사투하다가 더이상 에너지가 없어 적당한 호구 가격에 택시 겟. 숙소까지 또 한 시간 반 걸려 도착했다. 택시 뒷자석에 앉아 도시가 떠나가라 울리는 경적 소리들을 들으면서 건조해진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먹은 해물 스프다. 맛있어서 다시 한 번 눈물 흘릴 뻔했다. 카이로는 미식의 도시다.
카이로 다운타운 숙소 뷰


카이로에선 피라미드 투어, 룩소르에선 서안 투어를 예약해서 다녀왔다. 설명을 바랐다기보단 혼자 다니기 무서워서 그랬다.

피라미드 내 벽화. 동물 목을 밟고 있는 남자의 종아리를 보면 근육 모양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사천 년 전의 그림이다.
하마가 자식을 낳고 있는데 악어가 바로 뒤에서 집어 삼키려고 입을 벌리고 있다. 생과 죽음이 연결되어 있음을 표현한 벽화라고 한다.
그려진 사람들은 모두 실존했던 인물들이다. 이슬람 내세관에서 죽음 뒤에는 최후의 심판을 받는데, 그 결과에 따라 환생을 하거나 못한다고 믿는다. 심판에서는 사람을 얼굴과 이름으로 분간하기 때문에 이렇게 그 사람의 모습과 이름을 적어 긍정적인 심판을 기원하는 벽화를 남긴 것이다. 흥미로운 건 형체를 알 수 없게 몸과 이름이 훼손된 사람들의 그림이다. 고대에는 자신이 미워하는 누군가의 환생을 막고자 이렇게 몰래 밤에 찾아와 그의 벽화를 훼손했다고 한다. 생생한 증거로 남아버린 고대의 혐오 감정이다.





밤 버스를 타고 룩소르로 넘어왔다.

발 모양이 가장 인상 깊었음
룩소르 신전



이 사람들 다 삐끼임

카이로 룩소르는 총 3박 4일로 짧게 다녀왔는데 여행 시작부터 기가 쭉 빨리면서 내내 인성의 바닥을 드러내놓고 다녔다.

카이로에서는 귀가 찢어지게 울리는 경적 소리와 캣콜링으로 거리를 나갈 적마다 불쾌해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는데, 룩소르는 그보다 더했다. 어딜 가든 삐끼들이 내 길을 막고 끈질기게 쫓아오는가 하면 위협적으로 다가와 붙거나 내 몸에 손을 대는 사람도 있었다. 가끔 그들의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에도 돈을 낼 때가 다가오면 일부러 외진 곳에 내려 주면서 협박조로 말을 바꾸고 돈을 갈취해갔다.

거리의 일반 남자들도 백이면 백 성추행과 성희롱. 하루는 액션캠을 목에 걸고 다니면서 얼마나 자주 캣콜링을 당하는지 찍어보려고 했는데, 미처 챙기질 못한 탓에 수포로 돌아갔다. 증거 자료가 없으니 체감상 7초에 한 번씩 캣콜링 당했다고만 적어둔다





이런 환경에 놓여본 게 처음이라 오히려 좋아, 동요되지 않는 마음을 연습해보자 생각하는데 자꾸 가슴 속이 뜨거워지고 폭력적인 상상을 하게 되는 건 생리 현상처럼 어찌할 수 없었다. 언제는 험악한 표정을 짓고 돌아다니다간 삐끼들에게 화를 내고 면전에다 욕을 뱉었다. 평소 언성도 높이는 일이 잘 없는데, 이렇게 밑바닥을 보이는 건 내 기억에 처음이라 기분이 이상했다. 그러다 한 순간에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계기가 있었다.


다섯 살 쯤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가 정면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와 눈을 맞추고 위악적인 표정을 짓더니 놀리는 투로 니하오를 말하고 비웃으면서 지나간다. 인사가 아니라 조롱이었다. 몇 백번은 보아온 똑같은 패턴이다. 근데 그때 신기하게도 빳빳하게 힘이 들어가 있던 목에 긴장이 풀리면서 그 상황을 멀리서 볼 수 있었다.

먼저 측은했다. 저 애가 뭘 안다고, 주변 형과 어른들이 하는 짓을 보고 배운 거겠지 싶은데, 그렇게 생각해보니 또 형과 어른들은 뭘 안다고 할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럼 나도 불쌍했다. 거리서 사람들이 툭 던지는 말들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모조리 상처받고 다닌 게


알지 못하고, 자신 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이게.. 그저 존재로서 갖게 되는 한계라는 점이 포괄적으로 이해되면서 나도 너도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이후에는 쓸데없는 고행을 집어던지고 에어팟을 끼고 다니면서 bgm과 눈앞의 풍경을 즐겼다. 가끔 시야에 말거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지만 신경이 쓰이거나 화나지 않았다.


룩소르 공항 가는 길.


다합으로 돌아오니 상준 소연은 그날 점심 쯤 카이로로 떠났다고 한다. 이제 프리다이빙 자격증 마지막 시험 준비를 해야 했다. 귀압력평형을 만드는 이퀄라이징은 문제가 없는데, 항상 호흡이 부족해 12m 전에 허겁지겁 올라왔다. 남은 기간에는 앱니아 트레이닝과 덕다이빙 연습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다합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염소들이 조신하게 앉아 있다.

아이다2 자격 취득 성공. 동규 오빠는 며칠 전 여행자들과 풋살을 하다가 발목을 다쳐 마지막 시험을 보지 못했다.


같은 날 저녁 다합 요가원에서 북토크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다녀왔다. 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여성분이 작가이신데, 한국에서 음악 교사로 일을 하다가 프리다이빙 선수가 되어 다합에서 오 년째 거주하고 있다. 그 이야기를 에세이로 펴낸 것.

한창 진로 고민하면서 나름 다양한 삶의 방식과 궤적들을 수집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지금 돌아보면 용기 있는 선택, 뭐 이런 스토리에 치중되어 있었다.



밤엔 동규 오빠가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카이로로 떠났다. 넷이 뿔뿔이 흩어지는 엔딩

오빠를 보내고 이 집엔 검은 고양이와 나만 남았다.

한참을 조물딱거리다가 뭐라도 챙겨주려고 냉장고를 뒤적이러 들어갔다 나오니 고양이가 사라져 있었다. 이제 정말 나 혼자.

다음 날 점심 비행기를 타고 오스트리아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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