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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24년 10월 이집트 다합 (1)

by 홍지우 2024. 11. 18.

다합(Dahab)은 홍해를 끼고 있는 해안 도시.
‘프리다이버들의 성지’, ‘배낭 여행자들의 무덤’ 등의 별명으로도 불리는데, 아마 다합보단 블루홀의 인지도가 더 높을 것이다. 블루홀은 직경 60m 깊이 130m에 달하는 다이빙 스팟인데,  유리 립스키라는 스쿠버 다이버가 객기로 혼자 내려갔다가 영상만 남기고 사고사한 그 곳이다. 다큐로도 많이 다루어져서 사고사 당시 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백만 원이면 한 달 충분히 살고 올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서 가게 된 여행이다. 계획하던 중 게하에서 지내는 것보다 부동산 업자를 통해 월세방 계약하는 게 더 저렴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래서 월세를 쉐어할 룸메 셋이 필요했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을 구해 한 달이나 붙어 있기엔 무리라고 판단, 인스타 스토리로 룸메 구인 글을 올렸다. 10월 여행 예정이었기 때문에 우선 가을학기 휴학자여야 했는데, 운좋게 동규 오빠가 그러했고 9월 중순 전역 예정이었던, 동규 오빠의 친구 상준 오빠가 그러했으며 동규 오빠의 지인이며 상준 오빠의 여자친구인 소연이가 남자친구 제대 기념 여행을 가볼까 하던 도중이었다. 이렇게 팀이 결성 되었고 나는 오스트리아에서, 셋은 한국에서 다합으로 날아가 만나기로 했다.

나는 상준 오빠, 소연이와 초면이었다.

입주한 날

다합에 도착해 부동산 중개인과 컨택을 시도했는데 그는 다합 최고의 마당발인 데다 너무 바빴다. 나중에 나중에만 되풀이하길래 결국은 모텔을 1박 더 연장하고 다음날 아침 그의 집에 찾아가 진구야 놀자 시전. 꼭 붙들고 집 보러 다니다가 가장 먼저 본 집으로 계약했다. 4인 한 달에 700유로(92만 원). 위치와 주인 성격, 집 컨디션 삼박자가 굿이라 조금 비싼 감이 있지만 계약했다. 전기세와 가스비는 2주 뒤부터 우리 부담이라고 말했는데, 그냥 끝까지 내주셨다.

이곳에선 걸레짝 행색의 양들이 잘들 몰려다닌다.


이것도 초반에나 했지 어느샌가 피부가 걷잡을 수 없이 그을려서는 그냥 거무튀튀하게 지냈다.


나-소연, 동규-상준 으로 식사 당번을 정해 매일 돌아가면서 저녁을 차렸는데, 상준 오빠의 그릇 상태가 살짝 슬픈 걸 보니 이 날은 동규-상준의 당번 날이었나보다. 동규 오빠는 여행 초반 흑백 요리사에 심취해 있더니 중반부터는 숨은 요리 고수가 되어 알리오 올리오나 해장 파스타, 고추장 찌개 같은 것을 뚝딱 해내곤 했다. 특히 고추장 찌개는 셋 모두가 쌍따봉을 날린 메뉴다.

식자재 조달엔 어려움이 있었다. 구운 고기가 가장 만만하겠거니 했는데 이곳 소고기는 너무 질겨서 삼키질 못한다. 고기향 껌에 가깝다.


거실에 나와보면 십중팔구 상준소연 커플이 스위치를 하고 있다.




하루는 크로스핏 나갔다가 말을 트게 된 포토그래퍼와 만났다. 일대일 워크샵인 셈이다. 근데 만나고 보니 이 사람이 찍는 사진과 내가 좋아하는 사진이 달라 되게 애매하게 흘러갔다. 이 사람은 스튜디오 촬영을 주로 하는 포토그래퍼로서, 나를 모델 삼아 찍으면서 조리개나 노출 등의 조작법과 구도를 알려주려고 했다. 반면 내가 원한 건 차라리 거리로 나가 각자 카메라로 이것저것 찍고서 피드백을 받는 식의 워크샵이었다. 나중엔 장소를 옮겨 보자면서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데 이 대목은 그나마 웃겼다

실습 핑계로 남자를 피사체로 만든 뒤 천천히 다시 현관문으로 유인하고 나와서 빠이했다.


헤어지면서 남자는 내 정체성이 이곳에서 현지인 사진을 찍기에 최적이라고 말했다. 이곳 사람들은 카메라에 민감하지 않은가요 물으니 자신처럼 나이든 남자에게는 경계심이 많지만 너 같이 어린 여자한테는 그렇지 않을 거다 시도해보라고

그래서 돌아가는 길엔 의사를 묻고 동의한 아이들을 몇 컷 남겼다. 이곳은 비교적 개방적인 도시라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들이 많은데, 몇 번 대화 섞어보면서 이곳도 이슬람 문화권이란 걸 다시 실감했다. 여자애들은 부끄러워 하면서 나한테 관심을 보이고 대화에 참여하지만 사진을 한 컷 남겨도 되겠니 물으면 하나같이 거부했다. 교육 받은 것처럼 즉각적으로. 근데 남자애들은 공부터 나한테 패스하고 보질 않나 사진 찍어달라고 먼저 요구하기도 했다.

여기 첫날부터 느낀 건데 개들이 상남자다. 걸음걸이가 터프하고 어디서든 드러누워 숙면을 취하고 있음. 광교에 있는 우리 춘삼이는 막 태어난 조카한테 기를 못 펴고 쭈구리 신세던데


그믐달 즈음 별 보러 다녀온 사우나




고양이가 정말 많았다. 우리가 계약한 집엔 먼저부터 소유권을 주장하는 고양이가 둘이나 있었다. 하긴 우리가 굴러온 돌이니 마당에 대한 점유권은 인정해 주었다. 동규 오빠는 훗날 이 고양이에게 호되게 찍힌다.



수중 사진을 찍겠다고 칠십 만원 상당의 액션캠을 장만해 갔는데 피사체 구하는 게 의외의 난관이었다. 그래서 아쉽게도 많이 찍진 못했다. 프리다이빙 연습 장소인 라이트하우스에서.




하얀 수영복을 입은 남자는 이곳에서 친해진 현지인이다. 로컬 음식점에 데려가 주겠다고 하더니 대로변에 나있는 노상 음식점에 도착했다. 보기완 다르게 사진에 나와 있는 모든 음식이 맛있었다. 저 양념된 밥도 간이 딱 맞아서 그것만 퍼먹어도 맛있을 정도. 새우를 계속 까줘서 감사하게 받아 먹었다.

며칠 뒤 라이트 하우스에서 동규 오빠와 다이빙하려고 나왔는데 새까남을 마주쳤다. 친구가 곧 온다기에 4인 테이블을 함께 쉐어하기로 했다. 곧바로 도착한 친구도 어려 보였다. 25-6 정도. 그러니까 동규 오빠 또래 즈음.

다른 국적의 또래 남자를 보면서 둘은 어떤 감정을 느낀 것 같다. 대화는 계속 이집트의 경제 상황과 세계 불평등으로 이어졌다. 둘은 이집트와 다른 나라들의 평균 임금 그리고 한 달 생활비를 (놀랍게도) 줄줄 읊으며 이곳에서 현지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암담한지 푸념했다. 이집트를 ‘제3세계’라고 표현했고 미국은 ‘제1세계’, 북유럽은 ‘제0세계’였다. 그들의 묘사에서 북유럽 특히 스웨덴과 덴마크는 적은 노동으로도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유토피아였다.

틀린 말은 아닌 것이 특히 지금 이집트 경제 상황은 매우 처참하다. 이삼년 전과 비교해 환율이 반토막 나버리면서 기름, 가스 같은 필수 소비재들의 물가가 급등했는데 임금은 그대로다. 조성된 공터 하나 없이 아이들이 맨발로 흙먼지 날리는 대로변에서 삼삼오오 모여 구슬치기 같은 걸 하는데, 오육십년 전 우리나라가 실사화된 풍경 같았다.

나중에 대화 나눠보니 동규 오빠도 당시의 대화 주제가 어느 정도 자신의 존재(또래 아시안 남성)로 인해 그리 흘러가게 된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젊고 똑똑하고 피지컬은 심지어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좋은데 그들은 순전히 운이 나빠 경제가 어려운 이집트에서 태어났고 나는 운이 좋아 비교적 잘 사는 한국서 태어난 것이 아닌가, 억울하다고 생각할 만하다, 현지인 한 달 임금과 맞먹는 돈을 우리 여행자들은 와서 하루만에 턱턱 써버리지 않냐, 어느 곳보다 박탈감을 느끼기 쉬운 환경이다, …



새까남은 대학을 나와 간호사로 일을 하다가 박봉에 불만을 품고 때려친 뒤 복싱 선수, 에어비앤비 방 사업 등을 전전해왔다. 최근엔 틱톡에서 아랍인들에게 여행 정보를 알려주는 콘텐츠로 주목 받아 꽤 많은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으며 얼마 전 영화 배우로서 데뷔하는 첫 작품 제작이 끝났다. 영어와 독일어를 할 수 있으며 최근엔 네덜란드어를 공부하면서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당장은 영업직으로 일하고 있다.

새까남의 친구는 현지인에게 월세로 계약한 집을 꾸미고 청소하여 에어비앤비로 운영하는 일을 하고 있다. 매일 마주친 해당 레스토랑 직원은 마찬가지로 새까남의 친구인데, 꽤 좋은 대학을 나왔다. 학력이 무용지물인 서버 일을 하는 것이 친구들 사이에서는 자조 섞인 놀림거리다.

새까남은 어디론가의 이민을 준비하고 있다. 한 달 뒤 며칠 뒤의 거처가 어떻게 될 지 자신도 알지 못하지만 이집트는 꼭 떠날 거란다. 꿈의 나라는 노르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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