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부활>과 권장도서
재작년부터 시험 기간 등을 핑계로 읽다 말다 해서 이번이 세 번째 시도였음. 아쉽게도 칠십 여 페이지 남겨두고 또 다시 포기. 손이 잘 가지 않아 몇 달을 이북 리더기에 띄워만 두다가 한국 문학이 읽고 싶어져서 노선을 틀음.
매번 거진 다 읽어가다가 포기해버려서 이번엔 거의 삼회독째인 것처럼 느껴졌음. 언제 다시 시도해볼 지 모르지만 이번 읽으면서는 이런저런 든 생각이 있어 우선 감상문을 작성해둠.
대략 줄거리는 이러함. 유곽에서 일하던 카튜샤라는 여자가 강도살인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음. 그때 네흘류도프가 배심원으로 참여했는데, 그는 단눈에 그녀를 알아봄. 젊은 시절 그녀는 네흘류도프 이모집의 하녀였음. 당시 그는 방학에 이모 집에 놀러가 그녀를 임신시키고서 화대로 퉁침. (이건 그녀에게 큰 상처였음)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그걸 새까맣게 잊고 호가호위하면서 잘 살고 있었음. 당시 카튜샤는 그 일로 이모 집에서 쫓겨나고 아이도 병들어 죽어 버림. 그렇게 흘러흘러 유곽 생확을 하게 되었고 거기서 누명을 쓰게 된 것임.
네흘류도프는 죄책감을 느끼고 그녀의 누명을 풀어주려고 배심원 표결에 참여했으나 우연하고도 절묘한 외적 요인들로 인해 표결문은 카튜샤가 감방 생활을 하게 하는 주요한 원인이 됨. 네흘류도프는 다시 이중의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다가 카튜샤에게 속죄하겠다며 면회 가서 결혼하자고 함. 그리고 감방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이 사회가 얼마나 부조리하며 자신이 대지로 부를 축적해가는 것이 얼마나 부당한지 실감하게 됨. 그래서 자기 땅을 다 농민한테 나눠줘 버리겠다는, 친누나와 매형 뒷목잡는 폭탄 선언을 해버림.
대부분의 다른 인물들은 부조리를 고발 및 노출하거나 네흘류도프의 결심을 저지하는 평면적 인물들로 그려짐. 카튜샤와 네흘류도프만이 내부에서 고뇌하고 참회하고 ‘부활’해가는 입체적 인물임.
이번엔 네흘류도프가 카튜샤 따라 시베리아로 가는 도중에 하차함. 다른 등장인물들에 대해 다른 해석의 여지를 용납하지 않는 그 납작한 묘사가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임. 오직 ‘타락 -> 부활’이라는 도식에 따라 모든 것이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져 있음. 인물과 현상들을 묘사할 때 작가 본인이 생각하는 선과 악, 옳고 그름의 잣대가 매우 분명하게 드러남. 단어들 자체도 무엇을 악, 그리고 선으로 표방하는지 노골적으로 지시하고 있음. (ex. 음란한 눈빛, 음탕한 어쩌구)
톨스토이 말년의 역작이라는데, 그래서인지 책 전체가 확신에 차 있는 인상. 질문은 없고 거대한 답변만이 존재한다고 느낌.
만약 이 책이 교화의 목적을 품고 있다면 성공적이긴 한 것임. 나는 실제 이 책을 읽는 도중에 내 양심이 너무 비대해지는 것을 느꼈고, 오만 것들에 죄책감 느끼는 경험을 함.
또 이 책이 읽혀짐으로써 사회 정의가 실현되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마저도 (꺼림칙하게) 성공이긴 함. 비대해진 양심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옳고 그름의 잣대를 겨누게 했고 만약 그가 ‘그르다’ 쪽의 사람이라면 참지 못할 분노를 느꼈음. 언젠가는 내 일이 아닌 데다 저 부당한 사람이 내 밥벌이를 책임지고 있는데도 혼자 나서서 일을 키울 뻔했음.
텍스트의 영향을 민감하게 돌아보고 나니 이런 종류의 책은 과연 아이들에게 읽혀도 되는 권장도서의 범주에 들어가려나 하는 의구심이 듦.
어릴 적에 읽는 책이나 주로 보는 미디어의 스토리라인 같은 건 기초적인 가치관과 자기 캐릭터를 형성하는 데 영향 끼친다고들 하자나. 왜 짱구도 애들이 보면 해롭다고 못 보게 하는 집 많았음. 내 생각에 그건 일차적으로 모방의 문제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근본적으론 아이가 본인을 ‘짱구화’하고 어떤 상황이든 익숙한 스토리 전개에 따라 생각하게 하기 때문에 위험한 거임. 애니에서의 관계와 맥락을 학습하면서 그릇된 예의관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물론, 엉뚱한 짓이 코믹 포인트인 짱구에 매우 물들여진 아이라면 아이의 잘못을 잘못이라고 납득시키는 과정에서 아이 무의식에 있을 짱구 이미지를 넘어서기란 훨씬 힘들 것.
아직까지도 아이들을 어떤 ‘스토리’로부터 보호한다면 단순 모방이나 정신적 충격을 염려하여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을 차단하는 방향으로 가는 경향이 있는데,
흠 그 측면 외에 더 근본적으로 위험할 수 있는 스토리는 <부활> 같은 것이 아닐까 싶음. 아이들에게 건강한 윤리관을 심어준다는 미명 아래 학습지 선생님들은 많이들 어린이 톨스토이 전집을 끼워 팔았지만…
그 ‘건강한 윤리관’이라는 게 대체 뭐임.
“응당 인간이라면 ~”의 구조로 사회와 악인들을 책망하는 책을 많이 읽다 보면 질문 없이 거대한 답변만을 얻게 되고, 어디에나 잣대를 쉽게 들이대는 완고한 사람이 될 수 있음. 네흘류도프 식의 의협심을 정의라 속단하고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규정하는 사고방식에 물들 수 있는 것임.
또 아이가 그런 당위성(응당)에 도취되다 보면 실제 사회와 인간 모습들에 하나 하나 충격 먹어가느라 사회에 융화되기 어려울 것. 화가 많아질 가능성이 높고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음….
+ 이런 책 유머도 전혀 없어서 진지충 되기 딱 좋음. 그럼 또 친구들이 안 놀아줘서 사회성 발달에 다시 한 번 애를 먹게 되는 것임
권장도서 심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구나 싶음